28편. 때로는 어떤 마음인지 너무 잘 알아도 버겁다

아이가 놀이터 한 가운데에서 울었다.
보통 아이가 울면, 그 마음이 잠잠해질 때까지 계속 계속 위로를 해주는데
눈물의 이유가 놀이터에 있는 친구들이라 나는 당황했다.
아 맞다. 혼자만의 속상함, 혼자만의 감정은 다루기가 쉬운 편이지만,
관계가 끼어들고, 다른 사람을 신경쓰기 시작하면 최강으로 복잡해지는거였지.

집에 돌아와, 쉬이 진정되지 않는 눈물 가운데에서 아이가 정확하게 마음을 말한다.
‘나는 혼자 있는게 제일 좋아. 방에 문잠그고 혼자 들어가서 놀 때가 제일 좋아’
‘엄마 아빠가 둘이 이야기 하는 걸 듣는 것도 싫어.’
‘사람이 많아지면 내가 원하는 걸 할 수 있는게 줄어들어.’

아이의 입에서 또박또박 나오는, 이 정확한 마음 내가 제일 잘 안다.
혼자서는 얼마나 자유로운지.
다른 사람들의 왈가왈부를 듣지 않아도 된다면, 머리가 얼마나 투명해지는지.
나도 사람들의 말들 사이에서 도망쳐 내 길을 가고 싶다.

이 마음이 수많은 사람들과 여러 중요한 관계 사이에서 나를 얼마나 슬프게 했는지가 떠올려진다.
이해받기는 어렵지만, 정말 아프게 슬픈 마음이다.

사람들과 연결되고, 마음을 나누고 싶으면서도
열심히 내 세상을 지키기 위해 숨어야 했던 오랜 시간이 나에게도 이어지고 있다.
이건 이번 생애 내 삶의 과제일지도 모르는데,
우리 아들도 안고 갈것 같아서 마음이 무거워진다.

왜 이렇게 자꾸 자꾸 무겁냐.

차 내리기

아이의 방학이 끝나서, 오랜만에 차를 내려보았다.
미국에서 차를 자주 내려 마셨었나보다.
차를 내리는데 눈물이 왈칵 나려고 했다. 그리움을 느꼈다.
정갈하게 아침을 시작하기도 했었구나.
그때는 부엌이 분리된 공간이었는데,
지금은 부엌이 한 가운데에서 북적북적이다.
많은 삶의 부분들이 편리해졌지만, 나의 영역이 부족한 느낌이다.
노트북도 너무 오랜만에 꺼냈고,
지갑에는 정리해야할 영수증들이 가득.
빨래도 이빨래 저빨래 나를 기다리고 있다.
정말로 오랜만에 내 시간! 이 시간이 자꾸 자꾸 또 와야 할텐데.

그동안 수고했다고

오랜만에 옛집에서 이사하는 꿈을 꾸었다. 12월에는 자주 꾸던 꿈이었다. 그러고 돌아보니 정말 집을 잘 꾸려내었다. 내 새로운 꿈들도 꿈틀꿈틀한다.

미국에서의 삶이 버텨내는 삶이었다면, 여기에서의 삶은 살아내는 삶인것 같다. 살아내려니 피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두려움이 앞서기 전에, 앞으로 잘 나아갈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싶다. 낑낑끙끙.

짜증내고, 울고, 무너질테지만. 그마저도 조금 더 당연하게 받아낼 수 있다면 좋겠다. 어제의 봄비는 움츠러들뻔했지만, 매섭지 않은, 봄을 더 당겨줄 다정한 비였다. 일상에 집중하며 더 힘을 내보겠다!

할머니 가시는 길

내가 힘이 들고 지쳐서 메말라 가고 있을 때,
영상 통화로 나와 연결된 할머니는 세상 내가 사랑스럽다는 눈빛으로 나에게 뽀뽀를 마구 해주셨다. 그때 나락으로 가던 나의 마음은, ‘그래 나는 그냥 마땅히 사랑 받을 수 있는 사람이다.’ 이렇게 건져냈다. 할머니는 마지막으로 나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셨다.

그리고 마당에서 구름 가는 것만 바라보고 계신다던 할머니는
구름이 되어서 우리의 곁을 떠나셨다.
나는 그때 하늘도 구름도 나무도 많이 보이는 놀이터에서 아이를 놀아주고 있었다.

그리고 짐을 싸고, 짐을 풀고.
집집마다 떠돌고, 집을 얻고.
그러는 동안 할머니를 다시 찾아가는 일은 늦혀져갔다.
때때로 어느 밤에 할머니를 잃었다는 사실이 떠오르면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 몰려왔다.

개학, 3월, 새시작의 시간들을 앞두고서
비가 내리는 할머니의 집으로 향한다.
땅 속에 할머니가 계시다는 투박한 설명으로 허무하게 인사가 끝났다.
그래도 생각보다 실감이 안나서,
그냥 너무나도 익숙하고, 할머니와 동일한 의미인 할머니의 집 마당에 앉아서 위로를 받았다.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은 아마 또 어딘가 내 안에 맺혔다가
어느 취약해진 밤에 끌어 올려지리라.

세상에 사연이 없는 사람은 없고,
떠나지 않는 사람도 없고,
떠나서 가는 곳은 알 길이 없고.
다만 아직 곁에 남아있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과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와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남겨야 하는지가 남아있는것 같다.



나를 사랑하기로 했습니다 (자기연민 워크북) 연습1

내가 친구에게 하듯이 나를 응원하기

‘내가 친구에게 하듯이 나를 응원하는 기술’은 DBT, 수용, 자기연민, 마음챙김 분야에서 자주 사용되는 기술입니다. 이 기술을 스스로에게 적용해 본 연습일지를 남깁니다.

  1. 내가 이번 생에서 마지막날까지 하고 싶은 일은 내 곁에 있는 사람을 열렬히 응원하는 일입니다. 누구라도 내 앞에 앉으면 그 사람을 오롯이 응원할 수 있을것 같은데! 그런데 내가 내 자신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보면, 그 차이는 놀랍게 큽니다. 내가 무슨 일을 벌여놨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오롯이 응원하기는 정말로 어렵습니다. 이렇게 세차게 내 자신을 혼내키는 목소리는 과연 어디에서, 언제부터 나와 함께하고 있는 걸까요? 슬퍼지면서, 이 엄격하고 강렬한 잣대와 멀어지고 싶습니다.
  2. 자신을 평가하고 비난하는 목소리와 멀리 떨어지기 위해서는 큰 노력이 필요합니다. 마음을 잡고 해야합니다 ㅜ.ㅜ 연습을 여러 번 해야합니다. 1) 먼저, 주어진 상황을 너무 크게 과장해서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은지?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는 없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2) 그리고서 조금 더 진정이 되는것 같으면, 지금 처해진 상황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 가족은 최근 귀국과 이사라는 큰 변화를 몇 개월에 걸쳐 소화하고 있는 중입니다. 소중하고 추억이 많았던 살던 곳과 친구, 물건들을 떠나보냈고 다시 찾아가는 것은 어렵습니다. 확실하게 정해진 것들이 없어서 미래를 계획하기 어렵고 불투명하게 느껴집니다. 무엇보다 내 마음 속에 품고 있는 것을 풀어놓을 시간과 공간, 지친 하루의 끝에 자유롭게 쉴 수 있는 우리가 만들어 놓은 공간과 물건이 부족하게 느껴집니다. 무엇보다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끊임없이 생각해야할 다음 것들 그리고 해결해야할 문제들입니다.’

    ‘머리가 터질것 같은 밤에 내 표정은 울상이고, 불안에 가득차 폭발적으로 알아내야할 것들을 검색합니다. 이때 누군가 나를 건드린다면, 나는 분명 짜증과 화를 낼 것이고 대답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음에 가득 차오르는 생각은 부족하다는 생각, 뭔가 앞으로 잘못될것만 같다는 생각입니다.’

    취약하고 울퉁불퉁한 감정이 가득한 red zone의 시간에 하고 있는 생각들은 실제보다 과장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솔직히 객관적으로 내가, 우리가 부족하다면 뭐가 얼마나 부족하겠어요? 그냥 이런게 삶이겠지요. 우리가 사랑하는 공간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구해야함을 그리고 나의 것에 문제가 생기면 어쨌든 내가 해결해야함을 받아들입니다. 이런 받아들임은 숨을 좀 돌리고, 먹을것도 좀 챙겨 먹고 그랬을 때 천천히 찾아갈 수 있습니다.
  3. 그 다음으로는 이렇게 내가 감정에 휩싸여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그 결과도 봅니다. 고립됩니다. 자꾸 혼자 해결하려하고, 더 이상 말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이 때에 자기연민이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것은 ‘연결‘ 입니다. 삶의 보편성을 떠올려 지금 이 세상에 모든, 또 나와같이 어려운 사람들과 연결됩니다.

    ‘고립을 향하는 슬픈 생각은, 나만 이러고 있는것 같다는 겁니다. 나는 왜 이렇게 힘들게 살까? 나만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굴까? 나만 왜 아직도 이러고 있을까? 나만 아직 부족한것 같다. 휴… 정말 슬픈 생각… 어디에 나서기는 커녕 그냥 조용히 숨어버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자기연민 분야에서는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문제로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숨어버리고 싶은 고립된 상황에서는 쉽게 와닿지는 않지만,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지나치는 모르는 사람들, 아니면 나늘 속상하게 하는 사람들 조차 ‘이 사람도 자신만의 고통이 있겠거니’ 생각하면 조금은 마음이 풀어지는것 같기도 합니다. 여기에 도움이 되는 태도들을 더해봅니다. ‘누구나라도 나와 같은 상황에서는 이렇게 느낄 수 있다’, ‘나는 ~~~~한 사람이라고 규정짓지 말자‘.

    ‘누구라도 정들었던 집을 떠나와 새로운 집과 정해진 직장 없이 하루를 꾸려나가는 일은 불안하고 걱정되는 일일것이다. 삶이 차곡 차곡 쌓아가는 일이라면, 우리 가족은 다시 차곡 차곡 쌓기 위한 출발점에 섰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것도 없어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내가 약하고 힘없고 금방 지치는 사람이라고 규정짓지 말자. 그런 말들로 나를 가혹하게 대하지 말자. 나는 나의 페이스가 있는 사람이고, 지금 이 상황을 견디며 끌어나가는 것만으로도 강한 사람이며, 천천히 나에게 맞는 익숙한 루틴을 찾으면 꾸준히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지금 나에게는 앞으로 밀고 나갈 관성이 생길 때까지의 스퍼트가 필요하다.’

    4. 마지막으로 내가 친구에게 하듯이 나를 응원해보려고 합니다.
    정말 나를 아끼는 사람들이 해준 말을 그대로 옮겨옵니다.
    ‘우리 딸 국내 생활 어려움이 없이 적응 하기를…’
    ‘언제나 그래왔듯 잘 헤쳐나갈거야’
    ‘우선은 둘 다 조금 쉬고, 에너지 충전도 하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
    한 마디, 한 마디 진심이 들어있지 않은 말이 없는데, 그대로 믿어지는데…
    내가 나 스스로에게는 해줄 수가 없는 말이었습니다.

    ‘나는 내가 나다운 방식으로 내가 좋아하는 삶을 찾아갈 것을 믿는다.’




27편. 엄마에게서 배운다

내가 어떻게 저 아래에서 헤매이다가 위로 올라나왔는 지를 본다.
교통체증도 뚫고, 주차난도 뚫고, 유모차를 힘차게 밀고 오는 엄마 하나를 보았다.
나는 분명히 막히는 도로에서, 주차 공간이 없는 길 한 가운데에서,
울상을 지으며 도망가고 싶어했을것 같아
그 엄마가 멋졌다.

영상 통화 속에서 아이의 떠오르는 욕구를 하나씩 하나씩 망설임 없이 순서대로 받아주는 엄마 하나를 보았다. 나는 분명히 그 다음을 생각하고, 뭐가 옳고 그른지를 생각하느라, 내가 감당할 수 있는지만을 재고 있느라 지난했을것 같아
그 엄마가 편안했다.

나도 물흐르듯이 그냥 그냥 앞으로 나아가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아주 조금씩 그렇게 해보려 위로 올라나왔다.

나는 또 다른 엄마라서,
매 순간 깊게 집중하고 파사삭 스러져 버린다. 그리고 쉬어야 다시 돌아올 수 있다.
이런 나를 받고, 어찌할 수 없는 나의 에너지의 흐름을 받고,
앞으로 나아간다.

나에게 없는 힘을 되돌려 주기 위해, 아이가 에너지 락(Rock)을 만들어왔는데도
힘이 생겨나지 않는 내가 슬펐다.
그래도 천천히, 미약하게나마 내가 정신을 차릴 때까지 조용히 기다려주는
아이에게 고마워하는 쪽으로…
내 이 얇고 쉽게 스러지는 에너지를 어떻게 보존해야하나 고민한다.

26편. 정직한 정서

아마도 깜깜한 밤을 지나가고 있는 것 같은 우리의 요즈음.
삶은 곧 고난이기 때문일까? 삶 때문에 묻어나는 정서들은 왜 이리도 거친것일까.

이전에는 울음이고 외침이던 것들에
정서가 묻어있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서럽게 우앙우앙, 악에 받쳐 엉엉 울면서 ‘원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진정이 될때까지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그런데 정직하게 시간이 흐르면,
정직하게 진정해서,
정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너를 보면서
그리고 나면 깔끔하게 상황이 종료되고, 새 기분을 찾아가는 너를 보면서
너의 정서는 아주 깔끔하구나! 군더더기 없이 정직하게 너의 마음을 향하여 있구나!

나의 정서는 너무 켜켜이 쌓여있어서,
이 정서가 어디에서 온건지, 얼마나 오랫동안 나랑 같이 엉켜있었는지, 진정이 되긴 할런지,
불러오는 2차, 3차, 4차, 정서들을 끌어안고 오래오래 앓는다.
내 마음으로 정직하게 향하는 길을 잃고, 분투(struggle)한다.

25편. 사랑의 뒷면

예쁜 것, 좋은 것을 보면 자연스럽게 피어오르는 사랑의 마음. 키우면 키울수록 커지고 많아지고 풍부해진다. 이 가볍고 부드러운 마음이 쉬이 날아가버리지 않고 마음속에 오래 묵으면 애잔해지는데,

응답받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친구들 하나하나가 모두 좋다고 들떠서, 그 친구들을 그리워하는 시간이 이어지더니

친구들의 거절과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걱정을 끌어모으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사랑에 뒷면이 있음을 본다.

도대체 어떤 슬픔이기에 밤마다 다시 꺼이꺼이 우는지, 나는 또 자괴감에 깊숙이 빠졌다가… 다시 사랑을 하기로 한다. 내가 매일 매일 할 수 있는 새로운 선택이다.

24편. 광야의 아이

내 집에서 내 눈안에, 내 규칙안에, 내 틀 안에 가두어 키우다보면
엄마에 매달려 사는 듯한 작은 아이가
광야에 내놓으면
천둥벌거숭이처럼 마음껏 내달린다는 것을 알았다.
뛰고자 하는 욕구도,
해보고 싶은 마음도,
가지고 싶어하는 강렬함도,
누구를 좋아하는 마음도,
다 자유로운데
그렇게 당당하고, 거침이 없는데
다만, 나만 종종 거리며 아이의 움직임을 눈으로 쫓고
가장자리에 머물러 뻘쭘하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나의 좁은 틀이 아쉽다가, 한스러운 밤이다.

23편. 피로

찾아보니 벌써 2년 째인 너의 no.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방식으로 만든 최선의 무엇이,
너에게는 단칼의 no라서,
나는 당황하고, 속상하고, 의기소침해지고, 드러누워있다.
아, 너는 나와 달라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하는 걸까?
나의 어디부터가 잘못된걸까?
우리 사이의 이 다름을 어떻게 해야하나.
무겁고, 모르겠고, 때때로 그만하고 싶어서 푹 쳐져있네.
내려놓아야 가벼워진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는것 같은데…
나는 늘 이렇게나 만사가 반짝 반짝 잘하고 싶네.
내가 흔들리고 있다, 그래서 너무나 피곤하다.
그런데 도망칠 곳은 없다ㅎㅎ 또 하루를 살아내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