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별 글 목록: 2020년 7월월

3편. 잠자는 얼굴

가족, 서로의 잠을 지키는 사람들

잠이 들면 누구나 처음으로 돌아가.
처음 세상에 나온 아기처럼 연약하고 선해지지.
낮 동안 출렁이던 마음의 물결도 처음처럼 잔잔해진단다.
한나절 어지럽던 미움도, 욕심도 다 사라지고,
잠든 얼굴에는 그저 사랑만 남게 된단다.
그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며,
서로의 잠든 얼굴을 오래오래 지켜보며
우리는 가족이 되어가는거야.

결국, 가족이란 서로의 잠든 모습을 지켜봐주는 사람이란다.

정홍 글, 애슝 그림, 하루 5분 탈무드 태교 동화에서

하루에도 몇번씩 수유를 하면서 아기를 뚫어져라 쳐다보게 된다.
내가 이렇게 한 사람을 오랫동안 관찰해본 적이 있었을까?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관찰한다는 것은 또 하나의 마음챙김 방법이기도 하다.
눈, 코, 입, 귀, 머리카락, 손, 발, 누구를 닮았나 하나 하나 검토한다.
(길어서 지루하긴 하지만) 30분 간의 허락된 평화의 시간이기도 하다.
눈을 지그시 감고 젖을 먹는 아가는 세상 착하고, 세상 조용하다.

(비록 아가를 재우는 길은 험난하지만), 잠자는 아가를 조심 조심 들여다보는 일은 두근두근한 일이다. 천사 한 명이 아기 침대에 잠들어 있다.
새로 알게된 세상의 여러 모습들, 소통이 잘 안되어서 여러번 울어재껴야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엄마, 아빠를 뒤로 한채로 아기는 평화의 장소로 건너갔다.

아가를 흘긋흘긋 보다가, 다음에 언제 또 일어나야 하나 뒤척이다가,
고된 하루를 보내고 잠들어 있는 남편의 얼굴을 마주하고 깜짝 놀란다.
아가와 같이 평화를 찾은 남편의 얼굴이 아가와 똑 닮아있다.
내가 자는 모습을 내가 볼 수는 없지만, 과연 나도 평화를 찾은 얼굴로 잠들어 있을까?
잠을 지켜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내 평화의 얼굴을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다.

2편. 출산과 호르몬의 작용

병원에서 퇴원한 후, 폭풍처럼 지나가는 몇 일 동안 나는 그 순간을 잊지 않기 위해 이런 메모를 남겼다.

‘눈물이 젖처럼 흘러나오고, 웃음이 방귀처럼 뿡뿡거린다 – 출산 후 감정상태에 대해서’

임산부나 산모가 자주 쓰는 말 중에 하나가 ‘호르몬 때문이다’ 이다. 내 생각이나 의지대로 조절되는 것이 없고, 뭔가 몸 속의 화학작용에 의해서 내 몸이 굴러가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때로는 이 호르몬이 참 신기하고 고맙기도 했다. 일반적인 상태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비현실적으로 부족한 수면시간을 가지고도 아기가 울면 벌떡 벌떡 일어날 수가 있었다. 상식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일정을 소화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아가에게 젖을 주고 나 또한 자기 위해 침대에 누우면, 잠은 오지 않고 하루 온종일의 힘듦이 한꺼번에 쏟아지면서 눈물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너무 너무 힘들어서 우는 울음이었다. 이렇게는 살 수 없다는 절망이 담겨있었다. 온종일 아기를 키우는 데에만 시간을 쓰다보니 내 마음이 담길 때가 없었다는, 내 마음에 가득 든 감정과 생각과 고민이 너무나 많아 터지듯 새어나오는 울음이었다. 그렇게 울면서 내 안에 터져있던 것들은 조금씩 조금씩 자취를 감추어나갔다. 그러면서 겨우 겨우 잠이 찾아왔다.

그런데 사람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힘듦 후에는 하이(High)한 상태가 찾아왔다. 도저히 참을 수 없게 웃어댔다. 남편이 실없이 던진 자조적인 말들이 너무나 공감이 되어서,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을텐데 마구 웃어댔다. 조금만 푹푹 내 맘을 건드려도 재미있어 웃음이 나왔다. 힘들지만 웃으라고, 그래서 바닥까지 가지는 말라고 그렇게 여러번 끌어올려졌다. 아기가 태어나면 산모의 몸 위에 올려진다. 그때까지의 고통을 모두 잊으라고, 아기가 올려지는 순간 아마도 행복과 기쁨, 영광의 호르몬이 뿜뿜 하는가 보다. 열심히 후기 찾으면서 걱정했던 회음부 꼬매기로 부터 멀어질 수 있도록 나의 아기가 나에게 와 있었다.

1편. 로빈이 출산후기

최근에는 출산 시, 출산을 유도하는 유도분만과 척추에 하반신 마취 주사를 맞는 무통주사가 일반적이다. 나도 출산을 앞두고 ‘어떻게 출산할 것이냐?’에 대한 선택을 해야했다. 이때에 내 생각은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 좋은 것이다’였다. 아기가 나오고 싶을 때 나왔으면 했고, 이에 따라 나의 신체 기관들이 서로 신호를 잘 주고 출산을 촉진시켜주길 바랐다. 그리고 나는 출산의 고통도 무서웠지만, 더 무서웠던 것은 척추에 주사를 맞는 것, 그리고 마취가 되어서 로빈이가 내려오는 신호를 알아채지 못해 어떻게 힘을 줘야하는지 모르게 되는 것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무통주사를 맞지 않겠다는 생각에 대해 ‘너무 힘들거다’라고 했지만, 나는 내가 원하는 선택을 하기로 했다. 무통주사 없이 아기를 낳는 것은 정말 트라우마가 될 정도로 죽을듯이 아팠고, 출산 과정을 모두 지켜본 남편은 내 얼굴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고통의 표정을 보았다고 했다. 그렇지만, 이 고통은 무통주사가 생기기 전 우리 엄마, 우리 할머니, 그 위의 할머니 모두가 알고 겪어낸 고통이다.

출산 직후에는 고통의 기억이 너무 괴로워서 밤잠을 설치고, 다시는 아기를 가지고 싶지 않다는 처참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지금은 후회하지 않는다. 무통주사를 맞지 않았기에 초산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빠른 시간 내에 아기를 낳았고, 자궁문 10cm가 열린 후에 로빈이가 나오기까지의 시간이 1시간보다 짧았다. 중간에 로빈이가 힘들어서 심박수가 낮아진다고 했을 때는 아픔도 모르고 있는 힘껏 밀어냈던것 같다.

그리고 나는 출산 후 내 몸의 회복 속도, 모유 수유에 빠르게 적응하는 것 이런 모든 것들이 무통주사를 맞지 않았기 때문임을 알고 있다. 나는 자연스러운 것의 힘을 믿고, 용기를 내어 선택을 한개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