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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 출산과 호르몬의 작용

병원에서 퇴원한 후, 폭풍처럼 지나가는 몇 일 동안 나는 그 순간을 잊지 않기 위해 이런 메모를 남겼다.

‘눈물이 젖처럼 흘러나오고, 웃음이 방귀처럼 뿡뿡거린다 – 출산 후 감정상태에 대해서’

임산부나 산모가 자주 쓰는 말 중에 하나가 ‘호르몬 때문이다’ 이다. 내 생각이나 의지대로 조절되는 것이 없고, 뭔가 몸 속의 화학작용에 의해서 내 몸이 굴러가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때로는 이 호르몬이 참 신기하고 고맙기도 했다. 일반적인 상태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비현실적으로 부족한 수면시간을 가지고도 아기가 울면 벌떡 벌떡 일어날 수가 있었다. 상식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일정을 소화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아가에게 젖을 주고 나 또한 자기 위해 침대에 누우면, 잠은 오지 않고 하루 온종일의 힘듦이 한꺼번에 쏟아지면서 눈물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너무 너무 힘들어서 우는 울음이었다. 이렇게는 살 수 없다는 절망이 담겨있었다. 온종일 아기를 키우는 데에만 시간을 쓰다보니 내 마음이 담길 때가 없었다는, 내 마음에 가득 든 감정과 생각과 고민이 너무나 많아 터지듯 새어나오는 울음이었다. 그렇게 울면서 내 안에 터져있던 것들은 조금씩 조금씩 자취를 감추어나갔다. 그러면서 겨우 겨우 잠이 찾아왔다.

그런데 사람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힘듦 후에는 하이(High)한 상태가 찾아왔다. 도저히 참을 수 없게 웃어댔다. 남편이 실없이 던진 자조적인 말들이 너무나 공감이 되어서,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을텐데 마구 웃어댔다. 조금만 푹푹 내 맘을 건드려도 재미있어 웃음이 나왔다. 힘들지만 웃으라고, 그래서 바닥까지 가지는 말라고 그렇게 여러번 끌어올려졌다. 아기가 태어나면 산모의 몸 위에 올려진다. 그때까지의 고통을 모두 잊으라고, 아기가 올려지는 순간 아마도 행복과 기쁨, 영광의 호르몬이 뿜뿜 하는가 보다. 열심히 후기 찾으면서 걱정했던 회음부 꼬매기로 부터 멀어질 수 있도록 나의 아기가 나에게 와 있었다.

상담이 끝나는 날

상담자: 네. 아주 잘 지내시고 있다니 저도 참 기쁘군요.

내담자: 그냥 그런 느낌이 들어서 …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참는다.)

상담자: 눈물을 글썽이시네요.

내담자: (울먹이며) 나는… (심호흡) 아이들과 다시 잘 지내게 됐고, 모든 게 다 좋아요. (잠시 침묵)

상담자: 그리고?

내담자: (침을 꿀꺽 삼키며, 침묵)

상담자: (부드럽게) 편안하게, 천천히 말씀하세요.

내담자: (심호흡을 하고 나서 흐느끼며) 나는 그저… 선생님한테 참 고마워요.

상담자: 잘 있으라고 작별 인사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죠?

내담자: 네?

상담자: 작별 인사하는 것도 힘든 일이죠?

내담자: (환해지며) 맞아요. 저를 참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상담자: 존슨 씨 스스로도 대단히 노력을 하셨어요. 여기서 많은 모험을 감수하셨지요.

내담자: (미소 지으며) 예, 그도 그런 것 같아요. 아무튼 줄리아한테도 같은 이야기를 했답니다. 잘 도와줘서 참 고맙다고.

상담자: 으음.

내담자: 그 애도 방금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과 같은 얘기를 했어요. 제가 아주 노력을 많이 했다고.

상담자: 맞아요. 만일 존슨 씨가 마음을 열고 저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제가 아무 도움도 될 수 없었겠지요.

내담자: 네. 모두에게 감사하답니다. 이제 혼자서도 해 나갈 수 있는 힘이 있어요.

상담자: (고개를 끄덕이며) 저도 그렇게 믿어요.

내담자: 선생님도 그렇게 느끼시는 거죠?

상담자: 그럼요. 아시지요?

내담자: 예

단기역동적 심리치료(TLDP:Time limited dynamic psychotherapy), Hanna Levenson, 2008, 정남운, 변은희 공역, 학지사의 내용을 부분 인용함. -chapter 12. 종결기의 문제들-

위와 같은 종결 장면의 상담 축어록을 읽으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나에게 거의 처음이나 다름 없는 내담자와의 종결 때 였는데, 위 축어록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내담자는 상담 내내 줄곧 힘들다고만 이야기 해왔었는데, 그 마지막 날 ‘다 괜찮다’고 했다.

위 축어록의 상담사인 Hanna Levenson(완전 젠틀~ㅎㅎ)과 내가 달랐던 점은 ‘울어버린 쪽이 나’라는 것이다. 내담자가 다 괜찮다고 하는데.. 그게 마치 나를 안심시키려는(또는 내담자 자신 스스로도), 종결을 준비하는, 내담자의 담대한 마지막 모습으로 훅 다가왔기 때문이다. 내가 울자, 내담자는 ‘선생님은 저를 좋아하시는군요’ 같은 류의 응답을 했었다.

맞다. 나는 내담자를 좋아한다. 잘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보고 있으면, 그리고 함께하다보면 그 사람을 좋아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다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사이로 돌아서서 그 사람의 다음 행보를 마음 속으로 밖에 응원할 수 없는 그런 한계를 가지게 되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런 거죠. 존슨씨의 삶의 무대에는 여러 사람이 왔다 갑니다. 이번에는 내가 왔다 가지만, 난 존슨씨 무대에서는 조연같은 거죠. 그리고 앞으로 존슨씨 무대에는 또 많은 사람들이 새로 왔다 갈겁니다. 앞으로도 그 무대에서 주연인 존슨씨가 계속 잘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 진심을 꾹꾹 눌러담는 마지막 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