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보관물: 마음챙김 육아

6편. 잘 먹기

아가가 깨어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지면서
그동안 힘겹게 끌어모아 사용하고 있던 체력의 한계가 점점 느껴지고 있다.
정신이 너무 없고, 육아에 집중하고 싶은 마음에 요리와 멀어졌다.
나는 아가가 낮잠을 자면 그동안 요리를 준비하는 평화로운 일상을 상상하고 꿈꿔왔는데,
그런 일은 아직까지 오고 있지 않다(현재 162days).

고통스러움과 소진은 내가 다 해야한다는 마음에서 시작되는것 같다. 요리도 내가, 육아도 내가, 이것을 다같이 소화하지 못하면 실패한것 처럼 느껴지는 마음.
그런데 이제 배달 음식을 시켜먹는 것에도 한계가 느껴지고, 정말 영양 보충, 식사 다운 식사가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시점이 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끼니를 챙기지 못하고 배고픔이 느껴지면 나의 정신 상태는 아주 너덜너덜 해져버렸다. 곧 울것 같은 아기를 옆에 앉혀두고 식사를 하면 체하는 일이 쉬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당연하지만, 나에게는 중요한 결단을 하게되었다. 내가 제일 못하겠는 일(자기 전에 엉엉 우는 아이 재우기 -> 남편은 가능함)을 과감히 포기하고 그 시간에 요리를 해서, 아기가 잠든 후에 식사를 하기로 했다. 아직 본격 요리가 시작된 것은 아니지만, 분명 우리는 아기가 잠든 후에 편안한 저녁 식사로 기력을 회복하고 있다. 시간을 가지고 침착하게 요리한 맛있는 요리를 앞에두고 천천히 먹으며, 음료를 곁들이고, 가능하면 디저트로 마무리를 할 수도 있다.
잘 먹게 되어 좋다. 앞으로도 냉장고에는 간식이, 다음 요리 식재료가 차곡 차곡 왔다가 뱃속으로 사라지는 삶을 꿈꾸며, 또 자라나는 아기와 함께하는 즐거운 식사 시간을 꿈꾸며.

5편. 엄마는 씽어쏭롸이터

한 번 해보고 싶은 직업이 있었다. singer-songwriter.
음감이랑은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지만, 느낌 아니까~ 그때 그 느낌 담아 음악으로 만들어내는 일은 멋있어 보였다. 그런데 그 꿈을 엄마가 되어 작게나마 이룰 수 있다니!
자장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

나는 원래가 자유분방한 사람이라, 노래 가사를 외우지 않고 내 맘대로 부르는 경향이 있다.
어느날, 나의 기분이나 생각과 맞닿아 있는 가사 한구절이 먼저 떠오르곤 하는데 그러면 맥락에 상관없이.. 내가 방금한 생각과 같은 저장소에 저장되어 있는 그 노래를 줄줄 불러보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날, 남편이 어떤 노래의 앞구절을 흥얼흥얼 거리면 나는 연관 저장소에 저장되어 있는 그 뒷구절을 자동적으로 따라 불러보는 것이다.

한 날은 엄마가 된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지치고 지쳐 노동요 느낌으로 노래를 시작했다. 그냥 내 생각과 마음을 아무 음에다가 붙여서 마구 불러대는 것이다. ‘괜찮아, 괜찮아, 아가야 오늘 하루는 어땠니? 엄마는 이러 이런게 힘든데, 너는 왜 그럴까? 너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걸까? 그래도 잘 해줄게, 재워줄게, 잘자라 안녕 안녕’ 이렇게 아무말 대잔치를 아무 음에다 붙여서 오래 오래 부르고 나면 마음이 뻥뚫리는 느낌이 있었다.

그 이후에는 일상이 아기 재우기인 시간들에서 자장가를 부르며, 오래된 자장가의 가사를 마음 속에 깊이 새겨보는 시간들이 왔다. 반짝 반짝 작은별, 이 노래의 영어 가사는 정말 우리 아기를 위해 만들어진 노래 같았다. ‘반짝 반짝 빛나는 작은 별, 내가 너의 의미를 어찌다 알겠니? 저 세상 높이 높이의, 하늘의 다이아몬드 같은, 반짝 반짝 빛나는 작은 별, 내가 너의 의미를 어찌다 알겠니?’ 그 즈음, 나는 다이아몬드를 박아놓은 듯한 아기의 눈을 보면서, 이 생명체의 알수 없는 신비로움 속을 떠다니고 있었다.

남편과 나의 애정하는 곡인 What a wonderful world를 열창하는 날도 있었다. 영어 가사를 한 번 외어보기로~ 여러번 여러번 다시 부르면서, 정말 우리 아이에게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를 목놓아 알려주고 싶었나보다. 클래식 자장가의 선율에 맞추어서도 내맘대로 개사를 했다. ‘잘자라 우리 아가 앞뜰과 뒷동산에 새들도 아기양도 모두 자는데~’ 여기 다음 가사는 잘 모른다. 그래서 ‘우리의 로빈이는 어떻게 잠드나요? 자아알 자거라’ 이렇게 내 마음을 담는다. 어느날은 아기를 재우다보니 ‘잠자리 날아다니다 장다리꽃에 앉았다’ 이 노래가 떠올라버렸다. 그래서 ‘로빈이 날아다니다 장다리꽃에 앉았다 살금 살금 로빈이가~ 살금 살금 로빈이가~’ 이렇게 돌림노래처럼 반복해 부르면서 아기를 살금 살금 재운다.

육아를 하면서, 최초 노래 기억에 저장되어있는 듯한 동요들이 불쑥 불쑥 튀어나온다. 그 노래를 잊고 산지 몇십년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아마 그 노래를 불렀을 당시 최초의 즐거움, 최초의 흥겨움이 같이 저장되어있지는 않을까? 힘든 육아 속으로 노래의 여유가, 위로가, 흥겨움이 스며들어간다.

.. 요즘 너무 힘들고 지쳐서 글도 생각나는대로 막썼다;; 그렇지만 남기고 싶은 중요한 순간이다!

4편. 육아의 무서움

열심히 아기를 돌보다가 센치해지는 밤이면 불안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한다.
작게는 ‘오늘밤 아기를 어떻게 재우나?’ 에서부터
크게는 ‘내가 없는 세상에서 살게 될 우리 아이’까지.

그동안 내가 예측할 수 있는 하루 하루를 만들기 위해서, 감당할 수 있는 결과를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애써왔는데.. 이제는 아무리 노력해도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생긴것 같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무섭다고 못하겠다고 물러설 곳이 없다는 무거운 책임감도 있다. 내가 멈추어 버리면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는 상태의 아기는 그 다음이 없다.
창가 너머로 해가 지고, 바쁘게 준비한 저녁을 먹다가 흘긋 바라본 아기의 천진난만한 눈동자를 통해서 갑작스럽게 두려움이 엄습하기도 한다. 하얀 도화지를 바라보는 마음, 아무런 때가 묻지 않은 아기에게.. 좋은 영향이든 나쁜 영향이든 영향을 끼치고야 말 나의 행동들. 그게 무섭게 느껴졌다.

생명의 존엄함을 느낀다. 좁은 산도를 열심히 통과해 나온 아기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면서 울고 빨며 자신의 생명을 지키고, 무럭 무럭 크면서, 그 다음, 그 다음 발달 단계를 차곡 차곡 쌓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떤 하나의 생명도 함부로 죽어서는 안되고, 무시받아서는 안되며, 그리고 결국 행복했으면 좋겠다.

장난감 상자에 써 있는 문구가 나의 두려운 마음을 위로한다.
‘아기는 완벽함을 원하지 않는다. 아기는 단지 당신(나, 부모, 양육자)을 원한다.’
세상의 모든 생명을 열심히 길러내고 있는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말이다.

3편. 잠자는 얼굴

가족, 서로의 잠을 지키는 사람들

잠이 들면 누구나 처음으로 돌아가.
처음 세상에 나온 아기처럼 연약하고 선해지지.
낮 동안 출렁이던 마음의 물결도 처음처럼 잔잔해진단다.
한나절 어지럽던 미움도, 욕심도 다 사라지고,
잠든 얼굴에는 그저 사랑만 남게 된단다.
그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며,
서로의 잠든 얼굴을 오래오래 지켜보며
우리는 가족이 되어가는거야.

결국, 가족이란 서로의 잠든 모습을 지켜봐주는 사람이란다.

정홍 글, 애슝 그림, 하루 5분 탈무드 태교 동화에서

하루에도 몇번씩 수유를 하면서 아기를 뚫어져라 쳐다보게 된다.
내가 이렇게 한 사람을 오랫동안 관찰해본 적이 있었을까?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관찰한다는 것은 또 하나의 마음챙김 방법이기도 하다.
눈, 코, 입, 귀, 머리카락, 손, 발, 누구를 닮았나 하나 하나 검토한다.
(길어서 지루하긴 하지만) 30분 간의 허락된 평화의 시간이기도 하다.
눈을 지그시 감고 젖을 먹는 아가는 세상 착하고, 세상 조용하다.

(비록 아가를 재우는 길은 험난하지만), 잠자는 아가를 조심 조심 들여다보는 일은 두근두근한 일이다. 천사 한 명이 아기 침대에 잠들어 있다.
새로 알게된 세상의 여러 모습들, 소통이 잘 안되어서 여러번 울어재껴야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엄마, 아빠를 뒤로 한채로 아기는 평화의 장소로 건너갔다.

아가를 흘긋흘긋 보다가, 다음에 언제 또 일어나야 하나 뒤척이다가,
고된 하루를 보내고 잠들어 있는 남편의 얼굴을 마주하고 깜짝 놀란다.
아가와 같이 평화를 찾은 남편의 얼굴이 아가와 똑 닮아있다.
내가 자는 모습을 내가 볼 수는 없지만, 과연 나도 평화를 찾은 얼굴로 잠들어 있을까?
잠을 지켜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내 평화의 얼굴을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다.

2편. 출산과 호르몬의 작용

병원에서 퇴원한 후, 폭풍처럼 지나가는 몇 일 동안 나는 그 순간을 잊지 않기 위해 이런 메모를 남겼다.

‘눈물이 젖처럼 흘러나오고, 웃음이 방귀처럼 뿡뿡거린다 – 출산 후 감정상태에 대해서’

임산부나 산모가 자주 쓰는 말 중에 하나가 ‘호르몬 때문이다’ 이다. 내 생각이나 의지대로 조절되는 것이 없고, 뭔가 몸 속의 화학작용에 의해서 내 몸이 굴러가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때로는 이 호르몬이 참 신기하고 고맙기도 했다. 일반적인 상태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비현실적으로 부족한 수면시간을 가지고도 아기가 울면 벌떡 벌떡 일어날 수가 있었다. 상식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일정을 소화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아가에게 젖을 주고 나 또한 자기 위해 침대에 누우면, 잠은 오지 않고 하루 온종일의 힘듦이 한꺼번에 쏟아지면서 눈물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너무 너무 힘들어서 우는 울음이었다. 이렇게는 살 수 없다는 절망이 담겨있었다. 온종일 아기를 키우는 데에만 시간을 쓰다보니 내 마음이 담길 때가 없었다는, 내 마음에 가득 든 감정과 생각과 고민이 너무나 많아 터지듯 새어나오는 울음이었다. 그렇게 울면서 내 안에 터져있던 것들은 조금씩 조금씩 자취를 감추어나갔다. 그러면서 겨우 겨우 잠이 찾아왔다.

그런데 사람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힘듦 후에는 하이(High)한 상태가 찾아왔다. 도저히 참을 수 없게 웃어댔다. 남편이 실없이 던진 자조적인 말들이 너무나 공감이 되어서,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을텐데 마구 웃어댔다. 조금만 푹푹 내 맘을 건드려도 재미있어 웃음이 나왔다. 힘들지만 웃으라고, 그래서 바닥까지 가지는 말라고 그렇게 여러번 끌어올려졌다. 아기가 태어나면 산모의 몸 위에 올려진다. 그때까지의 고통을 모두 잊으라고, 아기가 올려지는 순간 아마도 행복과 기쁨, 영광의 호르몬이 뿜뿜 하는가 보다. 열심히 후기 찾으면서 걱정했던 회음부 꼬매기로 부터 멀어질 수 있도록 나의 아기가 나에게 와 있었다.

1편. 로빈이 출산후기

최근에는 출산 시, 출산을 유도하는 유도분만과 척추에 하반신 마취 주사를 맞는 무통주사가 일반적이다. 나도 출산을 앞두고 ‘어떻게 출산할 것이냐?’에 대한 선택을 해야했다. 이때에 내 생각은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 좋은 것이다’였다. 아기가 나오고 싶을 때 나왔으면 했고, 이에 따라 나의 신체 기관들이 서로 신호를 잘 주고 출산을 촉진시켜주길 바랐다. 그리고 나는 출산의 고통도 무서웠지만, 더 무서웠던 것은 척추에 주사를 맞는 것, 그리고 마취가 되어서 로빈이가 내려오는 신호를 알아채지 못해 어떻게 힘을 줘야하는지 모르게 되는 것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무통주사를 맞지 않겠다는 생각에 대해 ‘너무 힘들거다’라고 했지만, 나는 내가 원하는 선택을 하기로 했다. 무통주사 없이 아기를 낳는 것은 정말 트라우마가 될 정도로 죽을듯이 아팠고, 출산 과정을 모두 지켜본 남편은 내 얼굴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고통의 표정을 보았다고 했다. 그렇지만, 이 고통은 무통주사가 생기기 전 우리 엄마, 우리 할머니, 그 위의 할머니 모두가 알고 겪어낸 고통이다.

출산 직후에는 고통의 기억이 너무 괴로워서 밤잠을 설치고, 다시는 아기를 가지고 싶지 않다는 처참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지금은 후회하지 않는다. 무통주사를 맞지 않았기에 초산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빠른 시간 내에 아기를 낳았고, 자궁문 10cm가 열린 후에 로빈이가 나오기까지의 시간이 1시간보다 짧았다. 중간에 로빈이가 힘들어서 심박수가 낮아진다고 했을 때는 아픔도 모르고 있는 힘껏 밀어냈던것 같다.

그리고 나는 출산 후 내 몸의 회복 속도, 모유 수유에 빠르게 적응하는 것 이런 모든 것들이 무통주사를 맞지 않았기 때문임을 알고 있다. 나는 자연스러운 것의 힘을 믿고, 용기를 내어 선택을 한개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