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 관찰일기

2018.6.5 화낮

House 느낌이 나는 집에 살면서 드디어 땅에 뿌리를 내리는 듯한 느낌을 가지기 시작하는 요즈음이다. 여기에서는 새집에 들어오면 다시 이사나갈 때 파손된 것이 없는지를 비교해 손상된 것에 대해 요금을 부과하기 위해 inspection을 작성해서 제출해야한다. 새로 리뉴얼한 집이지만, 디테일한 부분에서 고쳐야할 것들이 있어서 곳곳을 조사한 후 수리 요청을 하였다. 자연과 더 가까워지면서 많은 벌레들과도 함께하게 되었는데, 방충망(screen)들이 나쁜 상태여서 3개 교체 신청을 했다. 이 과정에서 방충망과 창문의 벌어진 틈새 사이로 벌 한마리가 들어와 벌집을 짓고 있었다.

벌이 꼼꼼하게 세심하게 벌집을 짓는 과정은 평화롭게 관찰하면 매우 신비롭고 흥미로운 광경이었으나(구멍구멍 머리를 박고 들어가 있다가 구멍 하나하나씩 좀 더 길게 만들어 확장해나간다. 다리를 비비기도 하고 가만히 멈추어있기도 하다.), 집을 해치는 해충(pest)로 보이기 시작하는 순간 굉장히 거슬리는 존재가 되었다. 벌집을 없애기 위해 검색을 열심히 했더니, 사람들의 대처방식이 전투같이 무서워보인다. 두꺼운 옷을 입고 살충제도 뿌리고, 불로 지지기도 한다. 숲속에 살다보면 큰 벌집이 생기는 일이 종종 있는가보다. 그런데 정성스레 벌집을 짓고 있는 벌을 보고있으면 단숨에 죽여버리기가 쉽지가 않다. 그리고 벌 한마리가 혼자 집을 짓고 있으니 그렇게까지는 죽이지 않아도 될것 같다.

또 벌은 벌집 주위에 호르몬을 뿌려놓아서 벌집이 없어지면 그 자리에 또 다시 지으니 다 죽여버려야한다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벌이 다시 집을 지을지도 모르니 수리해주는 maintenance가 와서 방충망을 바꿔주면 그때 없애고 벌에 대한 대처방법도 물어봐야겠다고 하고 기다리기로 했다. 한편으로는, 벌을 한 번 쫓아보고자 향도 피워보고 해충퇴치 기계도 달아보는 등 소소한 시도를 해본다. 오피스에 가서 방충망 3개 수리 요청을 했더니 잘 못 알아들었지만 대충 ‘스크린은 재고가 있는지 확인해봐야 되어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는데, 다른 문제는 maintenance가 오늘 가도록 요청을 하겠다.’라고 하더라. 그래서 요청한 목요일 부터 기다림이 시작~ 목요일도 안 오고, 금요일도 안 왔다. 주말에 아파트 고치는 작업은 하는 것 같아서 기다렸는데 안오고, 월요일도 안 오고…

그동안 벌집(bee hive)은 자꾸 커진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서 벌이 집을 얼마나 더 지었나 관찰하고 때때로 벌이 왔나 안왔나 관찰한다. 벌이 한동안 안 오면~ 오는 길을 잊었나봐하며 기뻐하지만 그럴 일은 절대 없고, 벌은 오랜 시간 나갔다가도 벌어진 틈새 사이로 정확히 찾아들어와 벌집을 관리한다. 벌집이 자꾸 커지는데 해결이 안되고 스트레스가 되니까 ‘벌이 나갔다가 새에 잡혀 먹었으면 좋겠다’ 또는 ‘새로 산 해충퇴치 기계에 벌이 마비되었으면 좋겠다.’, ‘향을 피웠으니 호르몬이 약해졌으면 좋겠다.’, ‘잉 이러다가 벌집에 애벌레가 다 알을 까고 벌이 마구마구 늘어나면 어떡하지’ 걱정이 마구 생산된다. maintenance는 이제나 오나 저제나 오나~~ ‘지난 주에 우리가 방충망 교체를 요청했는데, 아직 안온다. 근데 bee hive가 생겨서 as soon as possible로 문제를 해결해주면 정말 좋겠다’고 오피스에 가서 말해볼까 영작을 한다.

그러다가 벌집은 점점 커지는데 곧 벌집을 잃을걸 생각하면 벌이 매우 밉고 거슬리다가도 불쌍하다. 정말 몇날 몇시간 조금씩 조금씩 해서 지어나간 거를 봤거든. 그냥 우리집만 아니면 다른 데다가 옮겨가서 그대로 다시 지어도 나는 괜찮은데.. 벌이랑 인간은 말이 안통하게 되어있다. ‘곧 너의 집은 없어질거야. 열심히 짓지 않는게 좋을것 같아.’

드디어 오늘 예상치 않은 순간에 maintenance가 왔다. 내가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도 없이 아저씨는 쿨하게 벌집을 처내고 새 방충망을 끼워넣었다. (내가 아저씨한테 조심하라고 말해주려고 했는데…ㅋㅋㅋㅋ)
…그리고 지금까지… 벌이 계속 다시 찾아와서 날아다니고 있다. 벌집을 짓던 곳으로 들어갈 틈새를 찾고 있는데 이제 더 이상 틈새는 없다. 벌집도 없다. 유리창에 가까이 붙어서 계속 집을 찾고 있는 벌을 계속 보고 있기 맘이 불편하다ㅜㅜ (블라인드 내려버림) 뭐 알려줄 수도 없고, 이 벌의 운명은 이제 어떻게 되는걸까? 포기를 할 수 있을까? 난 몰라~~

그렇게 해결해야 할 미션 하나는 클리어 되었습니다.

벌 관찰일기”에 대한 1개의 생각

  1. 손서연

    쌤…읽는 내내 입가에 미소가 ㅎㅎㅎ
    벌 하나에 수많은 생각과 마음을 이렇게 글로 표현한다니.. ㅎㅎ
    아주 작은 존재 하나에도 마음을 쓰고 있는 쌤이 너무 사랑스럽다고 느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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